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진실을 기록한 자, 침묵을 강요한 권력 - 넷플릭스 사진사와 우편배달부: 카베사스 범죄(El fotógrafo y el cartero: El crimen de Cabezas)'

by sncanada 2025. 9. 5.

넷플릭스 다큐 「El fotógrafo y el cartero」

한 장의 사진이 불러온 피의 대가: 넷플릭스 다큐 '사진사와 우편배달부 - 카베사스 범죄'

여름 밤, 해변 마을의 파티가 끝나갈 무렵. 한 사진기자가 집으로 돌아가려 차에 오르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이 다가온다. 납치, 고문, 총성, 그리고 불길 속에 사라지는 몸뚱이. 이건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1997년 아르헨티나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진사와 우편배달부: 카베사스 범죄(El fotógrafo y el cartero: El crimen de Cabezas)'는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파헤친다.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닌, 권력이 진실을 어떻게 짓밟으려 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한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영웅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다큐를 본 후,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먼 나라의 옛날 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다큐를 처음 접한 건 우연이었다. 넷플릭스에서 추천 목록을 스크롤하다가 제목이 눈에 띄었다. '사진사와 우편배달부' – 평범한 직업처럼 들리지만, 그 뒤에 숨겨진 '카베사스 범죄'라는 부제가 호기심을 자아냈다. 보자마자 빠져들었다. 감독 알레한드로 하르트만은 이전에 '카르멜: 마리아 마르타를 누가 죽였나?'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데, 이번에도 실제 증언과 영상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큐는 2022년에 공개됐고, 러닝타임은 1시간 46분 정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훨씬 크다. 이 작품은 아르헨티나의 199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군부 독재가 끝난 후에도 뿌리 깊게 남아 있던 부패와 권력의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주인공은 호세 루이스 카베사스, 아르헨티나 최대 주간지 '노티시아스'의 사진기자였다. 그는 1961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빌데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1989년부터 노티시아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진은 단순한 스냅샷이 아니었다. 정치인, 유명인사들의 본질을 포착하는, 때로는 장난기 넘치고 창의적인 작품들이었다. 1995년에는 말비나스 전쟁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사진으로 플레야데 상을 받기도 했다.

이야기는 1996년 여름, 피나마르 해변에서 시작된다. 피나마르는 아르헨티나 상류층이 휴가를 즐기는 고급 리조트다. 정치인, 사업가, 연예인들이 모이는 곳. 카베사스는 동료 기자 가브리엘 미치와 함께 그곳에서 취재 중이었다. 그들의 타깃은 알프레도 야브란이라는 인물. 야브란은 우편 사업으로 거부가 된 기업가로, 정부와의 유착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그는 사진 찍히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심지어 정보기관조차 그의 얼굴 사진을 갖고 있지 않다고 자랑할 정도였다. 야브란의 사업은 우편 배달부터 정부 인쇄물까지, 국가와 밀접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부패와 폭력이 숨어 있었다. 여러 기자들이 그를 추적하다 위협을 받았고, 일부는 공격당하기도 했다.

카베사스는 운 좋게도 야브란과 그의 아내가 해변을 걷는 장면을 포착했다. 흰색 체크 수영복 차림의 야브란, 검은 수영복을 입은 아내. 이 사진은 1996년 3월 노티시아스 표지에 실렸다. 세상에 야브란의 얼굴을 처음 공개한 순간이었다. 이 보도는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었다. 야브란의 사업과 정치권 유착을 폭로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아르헨티나 경제장관 도밍고 카바요는 야브란을 '마피아 두목'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카베사스의 사진은 그 증거처럼 작용했다. 하지만 이 '승리'는 곧 재앙으로 돌아왔다. 1997년 여름, 카베사스는 다시 피나마르로 갔다. 이번에는 사업가 오스카르 안드레아니의 파티를 취재하기 위해. 파티가 끝난 새벽 4시경, 그는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납치됐다. 범인들은 그를 근처 호수 근처 빈터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그는 구타당하고, 수갑 채워지고, 고문을 당했다. 결국 머리에 두 발의 총을 맞고, 대여 차 안에 넣어 불태워졌다. 시신은 오전 5시 30분에서 7시 15분 사이에 발견됐다. 이 잔혹한 범행은 불과 두 시간 만에 끝났다.

이 사건은 아르헨티나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1970~80년대 '더러운 전쟁' 시기처럼, 독재 시대의 잔인한 살인을 연상시켰다. 그때 수많은 기자와 시민들이 사라졌고, 3만 명 가까이 실종됐다. 카베사스의 죽음은 민주주의 회복 후 처음으로 벌어진 언론인 살해로, 독재의 잔재를 상기시켰다. 언론계는 즉시 반발했다. 기자협회, 인권단체,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행진, 차량 행렬, 기차 시위, 공개 집회, 사진 전시가 이어졌다. "카베사스를 잊지 말자(No se olviden de Cabezas)"라는 구호가 상징이 됐다. 이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었다. 정의를 요구하고, 면죄부 문화에 대한 경고였다. 정부는 압력에 못 이겨 수사를 시작했다. 당시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은 사건을 명확히 밝히겠다고 약속했지만, 야브란과 가까운 관계로 비판받았다. 메넴은 야브란의 사설 비행기를 타기도 했고, 법무부 장관은 야브란에게서 전화를 받았다는 게 드러나 사임했다.

수사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마르 델 플라타 항구의 매춘업소 주인과 연결된 '로스 페피토스' 그룹. 다른 하나는 경찰과 연루된 쪽. 경찰 정보원 카를로스 레드루엘요, 경찰관 구스타보 프렐레소, 라 플라타 지역의 네 명의 미성년자('로스 오르네로스')가 체포됐다. 프렐레소의 아내 실비아 벨라우스키는 남편이 카베사스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고 증언했다. 야브란의 경호 책임자 그레고리오 리오스도 연루됐다. 이들은 '로스 오르네로스' 갱단으로 불렸다. 호라시오 브라가, 호세프 아우게, 세르히오 곤살레스, 헥토르 레타나, 세르히오 카마라타, 아니발 루나, 구스타보 프렐레소 등 8명이 2000년 2월 종신형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 석방됐다. 레타나는 범행을 자백하고 프렐레소를 지목했지만, 감옥에서 사망했다. 카마라타와 루나는 지금도 피나마르에서 보안 일을 한다고 한다. 야브란 본인은 1998년 5월, 수사 압박 속에서 자살했다. 그의 죽음은 여전히 의혹을 남겼다. 일부는 가짜 자살이라고 믿는다.

다큐는 이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실제 뉴스 영상, 현장 사진, 생존자 인터뷰가 핵심이다. 카베사스의 동료 가브리엘 미치는 "우리는 야브란의 비밀을 파헤치려 했고, 그게 우리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말한다. 그의 증언은 감정적이다. 가족들의 이야기 또한 가슴을 울린다. 카베사스의 아내 크리스티나 로블레도는 스페인으로 이주했지만, 편지를 통해 "그의 맑은 눈빛이 딸의 눈에서 보인다"고 전한다. 감독은 단순히 사실 나열이 아닌, 사회적 맥락을 강조한다. 1990년대 아르헨티나는 군부 독재(1976-1983)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민주주의가 회복됐지만, 부패는 여전했다. 메넴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경제를 개방했지만, 그 이면에 야브란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그는 우편 사업으로 정부 계약을 독점하고, 경쟁자를 제거했다. 카베사스의 사진은 이 구조를 흔든 '탄환'이었다.

이 다큐를 보며 떠오른 건 내 자신의 경험이다. 몇 년 전, 지역 신문에서 일할 때였다. 작은 마을의 부패한 공무원을 취재하다 위협 전화를 받았다. "더 파헤치면 가족이 위험하다"는 내용. 그때 느꼈던 공포와 무력감. 카베사스의 이야기는 그걸 상기시켰다. 그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내와 딸, 부모님, 여동생. 하지만 진실을 추구하다 목숨을 잃었다. 다큐에서 그의 여동생 글라디스 카베사스는 "오빠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냥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었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났다. 우리는 종종 영웅담을 좋아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이다. 카베사스의 죽음은 아르헨티나 언론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기자들은 더 단결됐고, 자유를 지키기 위한 운동이 일어났다. FOPEA(아르헨티나 저널리즘 포럼)는 매년 1월 25일을 추모일로 정하고, 범인들의 재수감을 요구한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카베사스, 현존(Presente)"이라는 외침이 들린다.

세계적으로도 이 사건은 언론 자유의 상징이 됐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기자 살해는 여전하다.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에서 매년 수십 명이 죽는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카베사스 사건 이후 기자 보호가 강화됐지만, 완벽하지 않다. 다큐는 이 점을 지적한다. "한 장의 사진이 총보다 위험하다면, 그 사회는 병들었다"는 메시지. 오늘날 소셜 미디어 시대,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가짜 뉴스와 압박 속에서 진실은 여전히 위협받는다. 트위터(X)에서 이 다큐를 검색해 보니, 최근 포스트들이 많다. 한 사용자는 "이 다큐를 보고 현재 아르헨티나 정치가 떠올랐다. 부패는 여전하다"고 썼다. 또 다른 사람은 "카베사스처럼 용기 있는 기자들이 필요하다"고. 2024년에도 이 이야기는 살아 숨 쉰다. 특히 2025년 현재, 아르헨티나에서 새로운 정치 스캔들이 터지며 이 사건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 다큐는 단순한 범죄 재구성이 아니다. 사회를 향한 경고다. 권력이 진실을 두려워할 때, 침묵은 공범이 된다. 카베사스는 카메라를 들었을 뿐인데, 그것이 무기가 됐다. 그의 유산은 "기억하라, 기록하라, 포기하지 마라"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주변의 작은 불의를 목격할 때 떠올려 보길. 어쩌면 우리 모두가 카베사스일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이 다큐를 찾아보자. 당신의 시각을 바꿀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