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를 켜고 이 시리즈를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범죄 드라마로 생각했는데, 한두 에피소드를 넘기다 보니 새벽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화면 속 형제들의 얼굴이 점점 내 마음을 파고들었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1989년 미국 캘리포니아 비벌리 힐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었다. 부유한 가정의 두 아들, 라일과 에릭 멘데즈가 부모를 총으로 쏴 죽인 사건. 언론은 그걸 '탐욕의 산물'이라고 포장했지만, 깊이 파고들어보니 그 뒤에 숨겨진 고통과 트라우마가 보였다. 이 시리즈는 그 비극을 재현하면서, 우리에게 '누가 진짜 괴물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이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느낀 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때론 가장 위험한 감옥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먼저, 사건의 뼈대를 떠올려보자. 1989년 8월 20일, 조세와 키티 멘데즈 부부가 집 안에서 산탄총에 맞아 사망했다. 현장은 끔찍했다. 총알이 15발이나 발사됐고, 부부의 몸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범인은 곧바로 그들의 아들인 라일(당시 21세)과 에릭(18세)으로 지목됐다. 형제들은 처음에 마피아의 보복이라고 주장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그들의 과도한 지출과 알리바이 조작이 드러나면서 체포됐다. 재판에서 그들은 부모로부터 오랜 기간 성적,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특히 아버지 조세는 성공한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로, 아들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며 테니스 선수로 키우려 했고, 그 과정에서 끔찍한 학대가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 키티도 알코올과 약물 중독으로 고통받으며, 학대를 방관하거나 가담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걸 '상속을 노린 계획적 살인'으로 몰아갔고, 형제들은 1급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가석방 가능성 없이 지금까지 감옥에 있다.
이 시리즈는 그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단순한 재현을 넘어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라이언 머피와 이안 브레넌이 제작한 이 작품은 '몬스터' 시리즈의 두 번째 시즌으로, 첫 시즌의 제프리 다머 이야기처럼 범죄의 심리를 깊게 파고든다. 총 9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는데, 각 에피소드가 라슈몬 효과처럼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사건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한 에피소드에서는 형제들의 어린 시절 플래시백을 통해 학대의 흔적을 세밀하게 그린다. 라일은 자신감 넘치지만 보호 본능이 강한 형으로, 에릭은 더 민감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동생으로 묘사된다.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라일을 연기한 니콜라스 알렉산더 차베즈는 외모부터 실제 인물과 비슷해서 몰입감을 주고, 에릭 역의 쿠퍼 코치는 특히 'The Hurt Man'이라는 에피소드에서 30분 가까이 되는 단독 장면에서 학대의 세부 사항을 털어놓는 장면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 장면을 보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단순한 대사 전달이 아니라,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로 고통을 전달하니까.
시리즈를 보면서 가장 강렬하게 느껴진 건, 가족 내 학대의 복잡성이었다. 형제들은 재판에서 아버지가 어린 나이부터 성적 학대를 저질렀다고 증언했다. 에릭은 6살 때부터 시작됐다고 했고, 라일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어머니는 이를 알면서도 막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당시 사회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1990년대 초반, 남자아이의 성적 학대는 '믿기 힘든 이야기'로 치부됐으니까. 검찰은 형제들의 증언을 '변명'으로 몰아붙였고, 언론은 그들을 '부유한 악당'으로 그렸다. 시리즈는 이 부분을 잘 포착한다. 예를 들어, 기자 도미닉 듄(네이선 레인 분)이 사건을 보도하며 여론을 조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듄은 재판을 취재하며 형제들을 비난하는 기사를 썼고, 이는 공정한 재판을 방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걸 보면서 생각했다. 미디어가 사건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그리고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떠오른 건, 내 주변의 비슷한 경험담이었다. 대학 시절, 가까운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겉으로는 밝고 활기찬 사람이었지만,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고통받았다는 걸 알게 됐다. 친구는 "가족이니까 참아야 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았지만, 결국 그 트라우마가 관계를 망치고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무력감이, 이 시리즈를 보니 다시 떠올랐다. 라일과 에릭처럼, 학대 피해자들은 종종 '왜 그때 도망치지 않았어?'라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대는 점점 쌓여서 피해자를 옭아매고, 탈출을 어렵게 만든다. 시리즈에서 형제들이 부모를 죽인 이유를 '공포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친구의 "참아야 해"라는 말과 겹쳐 보였다. 만약 친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사회는 그를 괴물로 볼까? 아니면 피해자로?
사회적 메시지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사건은 가정폭력과 성적 학대의 문제를 드러냈다. 1989년 당시, 미국 사회는 부유한 백인 가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믿지 않았다. 여론은 형제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살인 후 수백만 달러를 쓰며 파티하고 쇼핑한 것)을 비난하며 '탐욕'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재판 기록을 보면, 그 지출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도피였다. 시리즈는 이 부분을 여러 에피소드에서 강조한다. 예를 들어, 'Spree' 에피소드에서 형제들이 쇼핑과 여행으로 감정을 마비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실제 사건에서도 드러난 사실로, 심리학자들은 이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으로 본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학대 증언이 배제된 점도 문제였다. 첫 재판은 배심원 불일치로 끝났지만, 두 번째 재판에서 판사가 학대 증거를 제한하면서 유죄 판결이 났다. 이걸 보면서, 법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할 때 정의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진 건, 새로운 증거 때문이다. 2023년에 에릭이 사촌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됐다. 살인 8개월 전 쓴 편지로, 아버지의 학대를 상세히 적었다. 또한, 로이 로셀리니(조세의 전 동료)라는 사람이 조세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이 증거들은 형제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며, 재심 청원을 이끌었다. 2025년 현재, 로스앤젤레스 지방검사는 이 청원을 검토 중이다. 일부에서는 형제들의 형량을 감형하거나 재심을 허가할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새 지방검사 나단 호크만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시리즈가 방영된 후, 이런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 넷플릭스 덕분에 젊은 세대가 사건을 재조명하고, 학대 피해자 지원 캠페인이 늘었다. X(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도 #JusticeForErikAndLyle 해시태그가 유행하며, 사람들이 학대 증언을 공유한다.
시리즈의 논란도 무시할 수 없다. 에릭 멘데즈 본인이 시리즈를 "부정직한 묘사"라고 비판했다. 특히 형제 간 근친상간을 암시하는 장면이 문제였다. 제작자 라이언 머피는 "부모의 관점도 보여줘야 했다"고 해명했지만, 피해자를 재차 상처 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시리즈는 9시간 분량으로 길고, 톤이 불안정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쿠퍼 코치의 연기는 2025 에미상 후보에 오를 만큼 인상적이었고, 조세 역의 하비에르 바르뎀과 키티 역의 클로에 세비니도 호평받았다. 전체적으로 로튼 토마토에서 45%의 평점을 받았지만, 시청자 수는 폭발적이었다. 첫 주에 1,230만 뷰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최상위에 올랐다.
이 모든 걸 종합해보면, 이 시리즈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다. 나에게는 가족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게 만드는 계기였다.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만약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봤다. 학대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가 폭발할 때 사회는 피해자를 탓한다. 라일과 에릭의 경우처럼. 시청 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귀 기울여 듣게 됐다.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만약 당신이 이 시리즈를 볼 계획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 뒤의 진실을 생각해보길. 어쩌면 우리 모두가 괴물이 될 수 있는 세상에서, 공감이 유일한 해독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