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멕시코 1970년대 초를 배경으로, 중산층 가정의 가사도우미 클레오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흑백 화면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일상의 고요와 역사적 격변 속 인간의 내면을 동시에 담아내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등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우리가 「로마」를 잊지 못하는 이유: 흑백 기억 속, 삶의 보편적 진실을 만나다
넷플릭스 영화 「로마」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화려한 색채도, 극적인 사건 전개도 없는 흑백 화면 속 이야기는 마치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오래된 앨범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었죠. 하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저는 묘한 공감과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우리 삶의 보편적인 진실을 조용히 일깨워주는 듯했습니다.
영화는 1970년대 초, 멕시코 시티의 한 중산층 가정집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 클레오는 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가사도우미입니다. 그녀의 일상은 특별할 것 없이 반복됩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빨래를 개고, 밥을 차리는 일. 매일 똑같은 일들이지만, 카메라는 클레오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 평범함 속에 숨겨진 삶의 미세한 떨림들을 포착합니다. 마치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한 장면 한 장면을 재구성하는 것처럼, 영화는 현실적이면서도 아련한 감성을 자아냅니다.
「로마」는 클레오의 개인적인 삶을 따라가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시대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가정의 중심이었던 아버지의 부재, 엄마의 힘겨운 감정,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클레오의 시선은 한 가정의 해체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동시에, 영화는 1971년 멕시코 학생 시위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 사건을 조명하며,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사회적 격변과 맞물리는지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극적인 연출 없이도 관객은 당시 멕시코 사회의 계급 문제, 정치적 불안,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약함을 느끼게 됩니다. 클레오와 함께 살던 다른 하녀 아델라의 모습이나 클레오의 남자친구 페르민이 보여주는 폭력성은 당시 사회의 불안정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로마」는 클레오의 작은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거울을 우리 앞에 내밉니다.
이 영화가 깊은 울림을 주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흑백의 미학입니다. 감독은 화려한 색채를 걷어내고 흑백 화면을 통해 감정의 본질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클레오가 아이를 낳고 슬픔에 잠기는 장면에서, 또는 그녀가 홀로 텅 빈 방에 앉아 있는 장면에서, 색이 아닌 표정과 몸짓에서 나오는 감정의 깊이를 오롯이 느끼게 됩니다. 흑백은 기억의 색깔이자, 삶의 본질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언어입니다.
「로마」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모든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무너져내리는 바닷가에서 아이들을 구하는 클레오의 모습은 단지 가사도우미의 희생적인 사랑을 넘어, 인간 존재의 숭고함과 연대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었던 클레오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구하는 영웅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그녀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사랑한다"는 진심 어린 말을 듣게 됩니다. 이는 클레오에게 삶의 가장 큰 위로이자 보상이 되었을 겁니다.
「로마」는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단순히 상업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예술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죠. 이는 「로마」가 단지 멕시코의 특정 시대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삶에 공명하는 보편적 감정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영화 속 주인공입니다. 때로는 클레오처럼 조용히 일상을 버텨내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슬픔과 마주하기도 합니다. 「로마」는 우리에게 "당신의 삶도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 있다"고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흑백 화면 속에서 빛을 발하는 클레오의 삶처럼, 우리 각자의 삶도 그 자체로 소중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로마」는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면, 혹은 다시 한번 보고 싶다면, 잠시 멈춰 서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